본문 바로가기

과학 환경자료

배터리와 태양전지 등에 널리 쓰이는 나노 소재의 물성을 개선할 획기적인 기술로 재탄생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초 과학실험을 하다 우연히 떠올린 아이디어가 배터리와 태양전지 등에 널리 쓰이는 나노 소재의 물성을 개선할 획기적인 기술로 재탄생했다. 


현택환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연구단장(서울대 석좌교수)과 조민지 연구원, 오명환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연구원팀은 보도블럭처럼 결정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나노 다결정'을 합성하고 물성을 크게 높이는 데 성공해 16일 ‘네이처’에 발표했다.

 

다결정 소재는 수많은 결정 알갱이들이 엉겨 붙어 만들어진 소재다. 가격이 저렴하고 제작이 쉬워 산업에 널리 응용되고 있다. 태양전지 원료인 폴리실리콘, 배터리의 흑연 전극 등이 대표적이다. 

 

연구팀은 다결정 소재의 결정 알갱이 사이의 경계에 생기는 미세한 틈인 ‘경계결함’에 주목했다. 경계결함은 소재의 물성을 결정하는 요소로, 강철에서는 강도를 약하게 하는 주범이다. 오명환 연구원은 “그동안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경계결합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해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배터리 전극 소재에서 전기적 성질을 띤 입자(이온)의 전도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이에 착안해 오히려 경계결함의 밀도를 높이고 그 특성을 충분히 활용해 물성을 높이는 방법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보도블록을 규칙적으로 배치하면 틈 역시 일정한 패턴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나노 결정 알갱이 역시 규칙적으로 배열하면 균일한 패턴으로 경계결함을 형성할 것이라고 보고 이를 실제로 합성했다. 이 때 오 연구원이 발견한 독특한 현상을 응용했다. 오 연구원은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각이 진 결정(크리스탈)의 씨앗(씨드)을 이용해 결정을 키우는 실험을 하다 모서리 근처에서 결정이 스스로 갈라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오 연구원은 이 현상을 학계에 처음 보고했다. 

 

구진은 정육면체 모양의 코발트산화물 나노입자를 기판으로 이용해 코발트산화물-망간산화물 이종접합체를 합성했다. 레고블록을 조립한 듯 코발트산화물 나노입자의 각 면 위에 망간산화물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증착되며 서로 부착되어  다결정 나노입자가 완성된다. IBS 제공
구진은 정육면체 모양의 코발트산화물 나노입자를 기판으로 이용해 코발트산화물-망간산화물 이종접합체를 합성했다. 레고블록을 조립한 듯 코발트산화물 나노입자의 각 면 위에 망간산화물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증착되며 서로 부착되어 다결정 나노입자가 완성된다. IBS 제공

이번 연구에서는 이 현상을 응용해 나노 크기의 결정 여러 개가 입체적으로 결합한 다결정 나노입자를 합성했다. 주사위 모양의 결정인 산화코발트 나노 입자를 일종의 ‘뼈대’로 삼아 산화망간 결정을 성장시켰다. 산화망간이 정육면체 각 면에 수직 방향으로 성장하다 각 모서리에 이르면 옆의 다른 면에서 성장한 다른 결정과 결합하지 않고, 마치 깊은 계곡처럼 틈을 형성한다. 이 틈이 바로 경계결함으로, 매우 규칙적으로 성장된다. 연구팀은 이 현상을 이용해 규일한 크기의 결정 알갱이가 규칙적으로 배열되도록 하는 합성법을 개발하고, 결정의 알갱이 개수를 조절해 경계결함의 밀도와 구조를 조절해 소재의 성능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이 방법으로 개발한 나노 다결정을 수소연료전지의 촉매로 사용한 결과 촉매 활성이 증가하며 전지의 성능이 높아졌음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금속과 세라믹 등 다양한 결정 재료에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증명해 반도체와 배터리 등 기능성 소재에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그 동안 구조의 복잡성 때문에 연구가 어려웠던 경계결함과 물성 사이의 상관관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플랫폼을 마련했다.

 

현택환 단장은 “촉매, 배터리의 전극 등 산업에 중요한 소재의 성능을 한층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선진국과의 치열한 소재 산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원천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를 주도한 두 1저자인 조민지 연구원과 오명환 연구원은 부부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