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돌려도 될까?
전자레인지 방사선은 위험하지 않다. 하지만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것은 건강에 해롭다는 의견도 있다. 전자레인지와 안전을 다룬 최신 연구들을 살펴보자.
전자레인지는 수십 년간 주방의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전자레인지만큼 찬반이 엇갈리는 가전도 드물다. 요리를 못 하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은인으로 칭송받는다. 하지만 어떤 셰프들은 전자레인지가 요리라는 예술을 시궁창에 떨어뜨렸다고 혹평한다.
전자레인지를 둘러싼 또 다른 쟁점도 있다.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돌리는 건 건강에 해로울까?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올바르게 사용하기만 하면 전자레인지 방사선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가열하면 영양소가 손실되는지, 플라스틱 용기에 든 음식을 가열했을 때 호르몬 교란이 일어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선 아직도 명확한 답은 없다.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돌리면 영양소가 파괴될까?
어떤 연구는 전자레인지에 채소를 돌리면 영양 성분이 파괴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전자레인지는 브로콜리에 들어있는 플라보노이드를 97% 제거한다. 플라보노이드는 항염증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식물 화합물이다. 그런데 전자레인지에선 삶을 때보다 3분의 1 정도 더 많은 손실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요리 오븐도 전자레인지 못지 않다. 2020년에 발표된 한 연구는 냉동 간편식을 가지고 전자레인지로 조리했을 때와 일반 오븐으로 조리했을 때의 영양 수준을 비교했다. 연구 결과 유일한 차이점은 전자레인지로 조리한 식품에 비타민 C가 “약간” 더 많다는 점 뿐이었다.
전자레인지를 통한 브로콜리의 영양 손실을 조사한 2019년의 한 연구는 조리 시간과 온도, 브로콜리가 물에 담겨 있었는지 등에 따라 손실량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 연구에선 조리 시간이 짧으면(브로콜리를 전자레인지에 1분간 조리), 영양 성분이 손상되지 않았다. 심지어 찌거나 전자레인지를 사용했을 때는 심장병 위험을 줄여준다고 알려진 플라보노이드의 함량이 늘기도 했다. 연구진은 “이 연구에만 한정했을 땐 전자레인지가 찌는 것보다 플라보노이드 보존 측면에선 더 좋은 방법”이라고 썼다.
하지만 끓일 때 넣는 만큼 많은 물을 넣고 브로콜리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플라보노이드는 감소했다.
미국 농무부 벨츠빌 영양 연구 센터의 수석 연구원 시안리 우는 전자레인지에서 플라보노이드 함량이 증가하는 것을 설명하는 과학적 합의는 없다고 말했다. 어쩌면 전자레인지를 사용했을 때 플라보노이드 양이 증가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조직이 연해지고 추출하기 쉬워져 측정이 더 잘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전자레인지에 채소를 돌리면 영양소를 더 많이 보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답은 어렵다. 각 식품의 조직과 함유 영양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는 “일반적으로 전자레인지를 이용한 조리법이 더 나은 편이지만, 채소마다 최적의 조리 시간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식물성 식품에 전자레인지가 최적의 방법은 아닐 겁니다.”
채소를 삶거나, 찌거나, 전자레인지로 조리한 후 페놀(다양한 건강상의 이점과 관련된 화합물) 함량을 비교한 연구도 있다. 전자레인지에 넣거나 쪘을 때는 호박, 완두콩 등에서 페놀 함량이 감소했다. 반면 시금치와 고추, 브로콜리, 그린 빈에선 변화가 없었다. 연구진은 항산화 성분이 얼마나 활성화되는지도 조사했다. 이 역시 삶았을 때보다 전자레인지로 조리했을 때 좀 더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어떤 채소에서는 적당한 열처리가 건강 관련 효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썼다.
2023년에 발표된 최신 연구에서도 전자레인지는 좋은 조리법으로 평가됐다. 연구진은 여러 가지 채소를 놓고 끓이거나 찌고, 전자레인지로 조리했다. 그 결과 전자레인지가 영양소 유지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전자레인지로 플라스틱 용기를 가열하면 위험할까?
우리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기거나 포장이 된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곤 한다. 그런데 어떤 과학자들은 이렇게 하면, 프탈레이트를 섭취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프탈레이트 같은 플라스틱 첨가제가 열에 노출되면, 음식에 녹아들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주립대 식품공학과 교수 주밍 탕은 “어떤 플라스틱은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내부에 고분자를 넣는데, 이런 첨가물은 낮은 온도에서 녹아버린다”며 “전자레인지 내부 온도가 100℃를 넘을 수 있는 만큼 이런 첨가물이 든 용기는 전자레인지 용으로는 부적합하다”고 말했다.
2011년에 발표된 한 연구는 400여 개의 식품용 플라스틱 용기를 조사했다. 그 결과 조사 대상 대부분에서 호르몬을 교란하는 화학물질이 누출됐다.
프탈레이트는 가장 흔한 가소제다. 플라스틱을 유연하게 만들고자 첨가된다. 테이크아웃 용기와 비닐 랩, 물병에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프탈레이트는 호르몬과 신진대사 체계를 교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이의 경우, 프탈레이트가 인슐린 저항성과 혈압을 높여 당뇨병과 고혈압과 같은 대사 장애 발생 위험을 상승시킬 수도 있다. 프탈레이트 노출은 난임이나 천식, ADHD와도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뉴욕대 의대 환경의학과 교수인 레오나르도 트라산데는 프탈레이트가 갑상선 호르몬을 교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호르몬은 임신 중 아기의 두뇌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스페놀(BPA) 역시 플라스틱 제품에 많이 쓰인다. 2020년에 나온 한 연구는 BPA를 흡입하거나 먹으면, BPA가 세포의 작용과 호르몬을 교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암과 호르몬 장애, 임신과 관련된 문제가 초래되거나, 면역 체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 연구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사실 프탈레이트는 장난감과 바디 로션 등 아주 다양한 제품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유해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프탈레이트가 함유된 플라스틱을 가열하면 노출량이 늘 수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애리조나 주립대 환경보건공학과 교수 롤프 할덴은 “전자레인지는 오염 물질을 결집시킨다”고 말했다. “실험실에서 화학 분석을 하기 전 샘플에서 오염 물질을 추출하는 데 이런 과정이 활용됩니다.”
트라산데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빈도가 높다고 해서 잠재적 위험 역시 크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화학물질 노출량과 호르몬 교란 위험 사이의 관계는 비선형적이기 때문이다.
트라산데는 “기존 학설은 용량과 독성이 상관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여러 연구를 통해 낮은 수준의 노출에서 가장 큰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확인됐고, 이에 따라 우리는 안심할 만한 노출 수준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을 가열할 때, 뚜껑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할덴은 “음식에서 물이 수증기 형태로 올라와 뚜껑 아래쪽에 모이고, 뚜껑에서 추출된 화학 물질이 그 물방울에 들어간 채 음식으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때 위험을 최소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플라스틱이 아닌 세라믹 같은 소재를 쓰는 것이다.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해야 한다면, 모양이 변형된 용기는 피해야 한다. 오래되고 손상된 용기는 화학물질이 용출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제품 하단에 있는 용기의 재활용 기호를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숫자 3과 “V” 또는 “PVC" 문자가 있는 용기엔 프탈레이트가 들어간다.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조리하거나 데워도 안전할까?
플라스틱을 피하더라도,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가열하는 것에는 또 다른 잠재 위험 요소가 있다. 균일하지 않은 가열과 높은 온도다.
우선 전자레인지에선 음식이 고르게 익지 않을 수 있으므로 조리보다는 음식을 데우는 용도가 낫다. 조지아 대학 식품안전학 교수 프란시스코 디에즈-곤잘레스는 “전자레인지로 가열하면 음식에서 어떤 부분만 다른 부위보다 더 뜨거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음식의 단면을 봐도 각 부위 온도가 다를 수 있어요. 특히 날 것의 식재료를 조리하는 경우에 (전자레인지로는) 온도를 완전히 균일하게 맞추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음식을 데울 때 쓰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일단 보통 음식에 있는 해로운 박테리아를 제거하려면 전체적으로 82℃가 될 때까지 가열해야 한다. 그리고 음식이 식을 때마다 박테리아가 다시 증식할 수 있으므로, 두 번 이상 음식을 데워서는 안 된다.
전자레인지의 높은 온도도 위험할 수 있다. 보통은 높은 온도가 문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리얼과 뿌리 채소 등 탄수화물이 많은 식품을 전자레인지로 조리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영양학과 교수 베티 슈워츠는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전자레인지에 구운 감자를 데우는 것을 관찰하다가, 감자 안에 있는 결정체를 발견했다.
분석해보니, 그 결정에는 요리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화학 물질 아크릴아마이드 함량이 높았다. 이후 슈워츠는 학생들에게 감자를 삶아 먹게 해봤다. 그 결과 전자레인지의 높은 온도에서 형성되던 아크릴아마이드는 생성되지 않았다.
아크릴아마이드는 동물 연구에선 세포의 DNA를 교란하고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직 인간에 대한 증거는 제한적이지만, 충분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게다가 다른 조리법보다 전자레인지가 아크릴아마이드를 더 많이 만들어 낸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저전력으로 데치거나 해동처럼 전자레인지 노출 시간을 줄이면, 아크릴아마이드 생성을 낮출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슈워츠는 “100℃에서는 분자 간의 자동 결합을 바꿔 훨씬 더 높은 에너지를 가진 분자를 생성할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가 충분하다”며 “이것이 돌연변이를 유도하는 DNA와 반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돌연변이 유전자가 많으면 암이 생길 수 있습니다.” 동물 연구에선 아크릴아마이드가 이런 연관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방사선은 안전할까?
전자레인지의 방사선은 무해하다. 전자레인지는 전구나 라디오와 같은 저주파 전자기 방사선을 사용한다. 전자레인지 안에 음식을 넣으면 음식이 이 마이크로파를 흡수한다. 이 흡수로 음식의 물 분자가 진동하고, 진동이 마찰을 일으키며 음식을 가열한다.
인간 역시 전자파를 흡수한다. 하지만 전자레인지는 상대적으로 낮은 주파수의 전자파를 생성한다. 그리고 그 전자파는 전자레인지 내부에 있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전자레인지 전자파는 무해하다는 게 탕의 견해다. (물론 전자레인지의 열이 무해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살아있는 생물을 전자레인지 안에 넣어서는 안 된다.)
탕은 “전자레인지는 우리가 매일 노출되는 전자파의 일부”라며 “빵을 구울 때도 우리는 오븐의 발열체에서 나오는 전자파와 적외선 에너지에 노출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사람끼리도 서로 방사선 파동을 주고 받죠.”
X레이와 달리 전자레인지는 이온화 방사선을 사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원자에서 전자를 분리해낼 만큼 충분한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다.
조지타운 대학 방사선 의학과 교수 티모시 조르겐손은 “DNA를 손상시키려면 화학 결합을 끊어야 한다”며 “방사선은 이런 식으로 세포 돌연변이를 만들고 암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르겐손은 전자레인지 방사선에 대한 우려는 전자레인지가 처음 발명된 후 몇 년이 지나면서 대부분 해결되었다고 했다.
특히 전자레인지의 안전성에 대해 많은 연구를 수행했던 미국 ‘육군 내틱 개발 연구소’의 과학자들이 우려 불식에 크게 기여했다.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조리할 때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오랫동안 안전한 주방 가전으로 통했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주의할 점도 많다. 특히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돌릴 때 사용하는 플라스틱 포장은 유의해야 한다. 호르몬을 교란시켜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2020년 7월 14일에 처음 게재됐지만, 최신 연구 결과를 반영해 2024년 2월 27일 수정 게재됐습니다.